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메유리 학도대 (문단 편집) == 이후 == 1946년 4월 4일 이들을 기리기 위한 히메유리의 탑이 건립되었다. 건립 장소는 이들이 가장 많이 사망한 제3외과 방공호 이하라 동굴 앞이었으며 이때 제3외과 방공호에서 여학생들의 뼈가 수습되었다. 탑에는 다음과 같은 추도가가 세겨졌다. >무덤 속 베개 딱딱하더라도 >편히 잠들기를 기원하노라 >함께 공부한 우리는 히메유리 탑 외에도 144명의 종군간호사를 기념하는 탑, 오키나와 사범대학 남자부(철혈근황대) 기념탑, 오키나와 현립 제2고등여학교 기념탑, 슈리고등여학교 기념탑도 세워졌다. 이들도 엄청난 희생을 치른 것이다. 이들도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되었다. 당시의 생존자가 관장을 지낸 [[http://www.himeyuri.or.jp/JP/top.html|히메유리 평화기념자료관(ひめゆり平和祈念資料館)]]이 운영 중이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집이 아닌 자원입대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나 생존자들은 인터뷰를 통해 "군 당국에서 강요한, 사실상 강제 징집이었다"고 회상했다. [[일본군 위안부]]로서 학대당했다는 증언과 주장도 있으나 일본 정부는 이것도 부인하고 있다. 자국민을 죽음으로 몬 당시 일본 군부의 막장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자 [[오키나와]] 주민에 대한 차별 등의 문제로 현재도 상당히 논란이 되는 사건이다. [[극우]] 세력들은 히메유리 학도대를 미군의 희생양인 양 미화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